사랑만으로,
이 인생을 끝까지 살아낼 수 있을까.
벌써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 12년을 넘겼다.
누구보다도 아픈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,
서로가 모국이 아닌 타지에서
매일을 버텨내기 위해 주고받았던 메시지들은
그 시절, 우리에게 삶의 원동력이었다.
그게 사랑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.
다만 서로가 서로에게 느꼈던
모성애, 부성애 같은 따뜻한 감정들.
그리움은 때로 말보다 진했고,
그래서 한 번 살아보자고 시작한 인연이
어느덧 12년이 되었다.
하지만 그 12년은
말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.
하루하루가 마치 작은 전쟁 같았다.
아내는 아팠고,
그래서 짜증을 낸다고 생각했다.
처음엔 다 이해하려 했다.
하지만 인간인 나도,
감정의 한계가 있었다.
언제부턴가 감정은 쌓이고,
폭발했다.
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도 나왔고,
‘ 가치 사느냐, 안 사느냐 ’ 같은 거칠고 아픈 단어들도
숨 쉴 틈 없이 오갔다.
서로의 성격을 조금씩 알게 된 즈음엔
이젠 큰일도 아닌 사소한 것들에
서로 마음이 다쳐갔다.
어느 날은,
아내가 내가 일하는 회사까지 찾아와
커다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.
그때 나는 정말 묻고 싶었다.
“과연 이 사람이랑 살아가는 게 옳은 걸까?”
어른들은 그러셨다.
“나중에는 사랑이 아니라 동지애로 살아가는 거다.”
어쩌면, 나는 지금 동지애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.
우린 너무나 다르다.
성격도, 시선도, 바라보는 방향도.
일주일에 한 번 얼굴을 마주할 때,
어쩐지 낯설기도 하고,
한없이 미안하기만 하다.
‘나 같은 사람 아니었으면,
당신은 더 나은 삶을 살았을 텐데…’
그런 미안함이 늘 마음을 짓눌렀다.
그리고,
아플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죄책감까지.
그 모든 감정들이
하루에도 몇 번씩 내 머릿속을 휘감고 지나간다.
마치, 정리되지 않는 잔해들처럼.
“돈 없어도 괜찮아. 당신만 있다면 산속에서도 같이 살 수 있어.”
한때 아내가 그렇게 말해줬다.
그 말 한마디가
세상의 어떤 확신보다도 따뜻하게 느껴졌고,
나는 그 말을 믿고,
정말 그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.
하지만 요즘은,
그 말이 점점 멀어지는 소리처럼 느껴진다.
요즘의 우리는
그놈의 돈,
정말 개도 물어가지 않는다는 그 돈 문제로
자주 다툰다.
사람에게 치이고,
믿었던 관계에 배신당하고…
부부는 닮는다던가.
그래서일까.
우리 둘 다,
사람을 너무 믿었는지도 모르겠다.
그 끝엔
집도 사라졌고,
아내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해버렸다.
이제는 사소한 말에도
서로가 예민해진다.
며칠 전,
나는 그만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.
“아니, 돈 없어도 살 수 있다며?
산속에 들어가도 당신이랑 산다더니,
고기 없이 어떻게 살 거야?
나 속은 거지, 맞지?”
그건 그냥
속상한 마음에,
좀 투정처럼,
풀이 죽은 마음을 웃음으로 감추고 싶어서 한 말이었다.
하지만 아내는
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.
섭섭했을까.
아니면 진심이라고 생각했을까.
말은 참,
돌이킬 수 없다는 게 가끔 너무 잔인하다.
그래도 1주일 동안 서로 얼굴도 못 봤고,
아무리 돈이 없어도
같이 마켓이라도 가야겠다.
냉장고에 뭐라도 채워놔야
그나마 숨통이 트이지 않겠나.
그렇게 오늘도,
작은 다툼 뒤에
조용한 보통의 하루를
다시 살아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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